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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폴리티션(The Politician)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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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앨범아트 캡쳐한 것


소재와 연출자가 전혀 내 취향이 아닌 넷플릭스 시리즈인데, 우연한 계기로 시즌1-2를 시청하게 되었고 생각보다 좋았던 점들이 많았다.

일단 제목부터 'The Politician'인, 피곤해지기 쉬운 정치 관련 소재에다가, 트레일러에서 볼 수 있는 거만한 표정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포스터 때문에 선뜻 보고싶지 않았다. 거기에 라이언 머피 감독작이다. 개인 취향에 따라 갈릴 테지만, 말도 안되는 맥락에서 '갑자기 분위기 노래'하는 장면을 밥먹듯이 끼워 넣는 뮤지컬 연출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운드트랙 앨범을 보니 딱 3곡이길래 이 정도면 참고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시즌1의 내용은 이렇다.
전혀 고등학생같지 않은 비주얼의 고등학생 배역들을 중심으로 미국 어느 부촌 하이스쿨의 학생회장 선거를 다룬다.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시즌 2에 그대로 등장하고 시즌1 전체가 뉴욕이라는 큰 무대로 나서기 위한 준비 과정처럼 느껴진다. 주인공 페이튼 호바트가 계속해서 대사로 자기의 대통령선거에 대한 포부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긴 여정이 되겠구나를 예상할 수 있다. 어쨌든 인물과 인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기 때문에 과정 자체를 보는 것이 재미있고 주인공 스스로가 계획한 바대로 되는 일 없이 처참히 실패하는 서사가 중구난방하지 않고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빈틈이 많은 거만함을 무기로 하나의 목표를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하지만 결말부에 가서 보기 좋게 몰락하며 공허한 눈빛만이 남게 되는데 여기서 가장 좋았던 장면과 대사가 나온다. 사실 이 대사의 앞뒤 맥락을 알기 위해 시즌1을 보았다고 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뒤쪽에 나왔다.\

 

드디어 네 인생이 선로를 벗어난 거야. 네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이야. 인생은 기차가 아니야. 계획 따위는 없어도 좋아. 이건 끝이 아니야. 시작이지. 이 공허함은 선물이야.

 

아주 무게감 있거나 심장을 울리는 대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시리즈를 보았을 당시의 나에게 정말 필요한 말이었다. 전반부에 나온 훌륭한 음악들보다도 좋았다. 건조한 톤으로 건네는 이 위로가 마치 시를 읽는 것처럼 들렸다.

(트리거가 될 수 있는 죽음 소재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무겁지 않고 발랄하고, 중요한 요소만을 결말까지 빠르게 끌고 가는 플롯의 심플함이 마음에 들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점이기도 한데 주요 흐름을 위해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어이없는 비약도 서슴치 않는다는 거다. 여기서 아쉬웠던 점은 너무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의 설정들을 만들어 두고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여성 캐릭터에게는 조력자 그 이상의 캐릭터를 부여하지 않는 게으름. 회차가 여유로웠다면 비중이 적절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좋게 변명하자면 이야기의 크기에 비하면 적절한 속도감과 버무려저 나름 성공적인 압축을 해냈다고 할 수 있다.

벤 플랫(페이튼 호바트 역)은 연기를 잘해서 짜증난다. 정말로 짜증나는 인물을 잘 표현한다. 인생에서 딱히 잃어본 것이 없는 자신감 포화 상태의 오만한 남성에서부터, 당장의 이익을 위해 뭐든지 할 구차한 성격을 지녔지만 어쨌든 주변인으로부터 사랑과 지지를 받는 비호감 인간상을 잘 너무 그린다.

재미있는 점은 연출과 캐스팅으로 꾸며진 화면이 굉장히 아름답다. 인물들의 착장이 자기 캐릭터를 개성있게 설명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 있어 보는 눈이 즐겁다. 기본적으로 정치인들과 그 참모들을 징그럽고 보기 싫은 전형적인 이미지로 꾸며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 느낌이 든다. 공간 사용과 드라마 시리즈에서 보기 드문 카메라구도도 눈에 들어온다. 내용은 진흙탕이지만 눈이라도 즐거워야 끝까지 볼 수 있는 그런건가.

각 시즌 중반쯤에 한 편씩 들어 있는 '유권자' 편이 좋았다. 저만큼 열을 올리고 서로 사기와 기만을 펼쳐가며 말 그대로 정치 '쇼'를 벌이는 출마자와 그 측근들에게서 멀어져서, 정치와 상관이 없기도 있기도 한 하루를 살고 있는 한 명의 유권자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총평

성실하지만 어떤 면에서 게으른 캐릭터 사용, 개연성은 버리고 과감함을 챙긴 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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